네가 어디에 있든, 레베카!

 

뮤지컬 레베카』를 보고

어떤 문학작품이던 제목으로 가장 쉽게 생각하는 것은 주인공의 이름이다. 오페라 카르멘과 뮤지컬 아르센 루팡처럼 말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뮤지컬 레베카는 주인공이 아니다. 뮤지컬 레베카에서 주인공은 (I)’이다. 화자가 나이기 때문에 나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고 미세스 드 윈터로만 불리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랄 수 있다. 그렇다면 레베카는 누구인가.

미세스 드 윈터, 그러니까 나는 부인을 잃고 절망하여 여행을 하고 있는 막심 드 윈터의 새 아내이다. 나는 고아인데, 반 호퍼부인의 말동무가 되어 여행을 하다가 그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 후 결혼을 하고, 막심의 저택인 맨덜리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것이 바로 뮤지컬 레베카이다.

어려서부터 귀족이었기에 우아하고 교양 있었다던 레베카와 달리 나는 교양 같은 것은 없었다. 단지 막심에 대한 순수한 사랑뿐이었다. 때문에 귀족여성의 대표로 추앙받던 레베카와 상당한 차이가 나는데 나는 그 차이를 따라잡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조력자로 댄버스 부인을 고르기도 했지만 뮤지컬의 마지막까지 그녀는 레베카만을 따를 뿐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일어나는 소소한 반전과, 우아하고 맨덜리 저택에서 절대적이었던 레베카의 반전, 그리고 막심 드 윈터에 관한 반전, 나는 이러한 반전을 겪으면서, 사랑은 여자를 강하게 만든다고 외친다. 그리고 처음 소심하게만 보였던 모습을 버리고 미세스 드 윈터는 나야라면서 레베카를 강하게 부정한다. 이러한 반전들과 나의 변화. 그리고 댄버스 부인의 한결같은 레베카 찬양과, 진실이 밝혀진 이후의 그녀가 반응 등이 뮤지컬 레베카의 감상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난초에 피는 꽃은 특별해

다 죽었다고 생각했을 때 검게 시들은 풀잎사이로

다시 붉은 꽃을 피우지

 

그녀는 난초처럼 되돌아 올 걸 난 알아

-영원한 생명, 댄버스 부인- 

댄버스 부인의 레베카에 대한 집착은 이 노래에 전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한 없이 순수한 여인이고, 막심이 어두운 과거를 가진 남자라면, 댄버스 부인은 로맨스에서 빠질 수 없지만 레베카의 주인공들에게는 빠져있는 집착을 가지고 있는 여인이다. 내가 왜 댄버스 부인의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지, 댄버스 부인이 내게 왜 적대를 가지고 있는지 영원한 생명이라는 넘버는 그것을 전부 알려주고 있다. 그래서 나는 다른 명곡들 중에서 이 곡을 한 번쯤 들어보라고 하고 싶다.

 

레베카의 한국 버전은 뮤지컬 원작자 실베스터 르베이와 미하엘 쿤체에게서 한국무대가 세계 최고다. 세계적인 실력을 지닌 한국 제작진의 노력이 완벽한 작품을 만들었다는 찬사를 들었다. , 2013년 제 7회 뮤지컬 어워드에서 연출상, 무대상, 조명상, 음향상, 여우조연상, 총 다섯 개 분야에서 상을 휩쓸었다. , 재연요청이 끊이질 않아 2014년 재연을 세웠고, 현재는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다. 최고의 찬사를 들은 만큼, VIP석이 아깝지 않은 공연이라 할 수 있겠다.

뮤지컬 레베카는 데프니 듀 모리에의 소설을 원작으로 두고 있다. 그리고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것은 뮤지컬뿐만이 아니다. 영화 레베카가 그것이다. 영하는 스릴러의 거장이라는 알프레도 히치콕이 감독을 맡았다. 뮤지컬과 영화의 차이점이 도드라지는 만큼, 뮤지컬을 보기 전, 한 번 감상해보는 것은 나쁜 선택이 아닐 것이다.

오페라가 아닌 뮤지컬 『노트르담드 파리』

뮤지컬노트르담드 파리

 

뮤지컬은 오페라와 달리 대사가 있다. 하지만 성스루(혹은 성쓰루)’라 불리는 뮤지컬도 존재한다. 오로지 노래로만 이루어진 뮤지컬이다.

오페라는 레치타티보아리아로 구성되어 있다. 레치타티보는 오페라의 문학적인요소, 그러니까 대사다. 아리아와 달리 단순한 음이지만 확실히 노래이기도 하다. 이 레치타티보가 뮤지컬과 오페라의 차이점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사가 없는 오페라와 큰 차이점이 두드러지지 않는 뮤지컬이 나왔다. 노트르담드 파리, 레미제라블, 캣츠, 요셉 어메이징 테크니컬러 드림코트등 많은 성스루 뮤지컬이 그 예다.

뮤지컬 노트르담드 파리는 프랑스 파리의 시테섬 동쪽에 있는 고딕 양식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1163년 루이 7세 시대 지어진 성당이지만 1584년 개신교 신자들의 폭동으로 외곽이 무너지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북쪽과 남쪽의 장미창은 아직도 건재하다고 한다.

외국 뮤지컬의 라이선스를 따올 때는 현지에 맞게 연출이나 대사를 조금 고치기도 한다. 하지만 노트르담드 파리는 노트르담 대성당이라는 특정한 장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배경을 잘 살리지 않으면 전달하려는 뜻이나 감정 선이 망가질 수도 있다는 점 때문에 오리지널의 연출을 고치지 않았다.

 

아름다운 도시 파리, 전능한 신의 시대

때는 1482, 욕망과 사랑의 이야기

 

이 노래는 대성당의 시대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뮤지컬 노트르담드 파리에서 이야기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 노트르담드 파리가 해설자 역할을 하는 음유시인 그랭구와르가 뮤지컬의 시작을 알리는 역할을 하는 노래기도 하다.

대성당의 시대를 시작으로 노트르담드 파리성스루뮤지컬답게 대사 없이 노래로만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시작한다. 성당의 앞 광장에 모여 살면서도 치명적인 아름다움과 순수함을 지닌 에스메랄다’, 약혼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에스메랄다에게 집착하는 페뷔스’, 에스메랄다의 순수함에 사랑을 느껴버린 콰지모도’, 신부임에도 그녀를 사랑해버린 프롤로’. 하지만 페뷔스를 사랑해버린 에스메랄다는 그와 밤을 보내려는 순간, 프롤로의 질투와 페뷔스의 치졸함으로 마녀로 몰리게 된다.

대성당의 시대에서 아름답다 말하던 파리는 뮤지컬 자체 내에서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조명도 어둡고, 가고일 석상이 등장하고 집시와 방랑자들의 카리스마 있는 노래들로 인해 음울하기 그지없다. 심지어 1부의 발다무르 카바레에서는 벌거벗은 여자가 나오거나 성행위를 묘사하곤 한다.

두 여자를 사랑하게 된 페뷔스나 신부임에도 질투에 눈이 멀어 자신의 죄를 에스메랄다에게 뒤집어씌운 프롤로. 객관적으로 봐선 그들은 치졸하고 욕망에 눈이 멀었다. 마지막에 가서 그들은 아름다운 에스메랄다까지 희생시켜 버린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순수함을 잃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콰지모도에스메랄다가 그렇다.

콰지모도는 어렸을 적 프롤로에게 주워져 종지기로 살았다. 곱추라는 이유로 추한 자들의 교황이라는 오명도 뒤집어썼다. 하지만 그는 순수했고, 마녀라 몰리는 그녀를 마지막까지 그녀를 외면하지 않았다. 에스메랄다는 경멸받는 콰지모도에게 물을 건네주는 착한 심성을 가지고 있었다. 또 페뷔스의 치졸함에 마녀로 몰렸으면서도 끝까지 그가 구해줄 거라는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것은 욕망에 치우친 그들보다 아름답다. 그래서 아름다운 노트르담 대성당에 어울리는 이는 페뷔스와 프롤로가 그토록 천하다던 콰지모도와 에스메랄다이지 않을까한다.

 

나츠메 소세키와 후타바테이 시메이의 I love you

 

나츠메 소세키와 후타바테이 시메이의 I love you

오늘은 조금 다른 이야길 해보려고 한다. 바로 번역에 대해서다. 외국의 문학을 우리가 감상하기 위해서는 번역작업 혹은 번안 작업을 한 번 거쳐야 한다.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소네트를 아는가. 소네트는 일정한 리듬과 규칙으로 지어진 정형시다. 14행으로 이루어진 시이다. 8행은 명제의 제시, 나머지 6행은 해결방안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 말고도 많은 규칙이 있고 이것은 16세기 와이어트와 서어리에 의해 영국으로 넘어갔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는 두 종류로 번역되고 있다. 피천득의 번역과 이덕수의 번역이다. 이 둘의 번역은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번역하고 있다.

 

From fairest creatures we desire increase,

That thereby beauty's rose might never die.

 

이 문장은 셰익스피어 소네트 1번의 1행과 2행이다. 이를 이덕수는 지극히 아름다운 것이 번식하기를 바라는 것은, 그로써 아름다운 그 장미가 소멸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나이다.’로 번역했다. 그에 비해 피천득은 가장 아름다운 사람에게서 번식을 바라는 것은 그래야 아름다운 장미가 죽지 않기 때문이라.’ 로 다르게 해석했다.

시 한 편을 번역하는 것도 사람마다 이렇게 달라진다. 다르게 말하면 번역가의 실력이 작품의 질을 바꾸기도 한다는 소리다.

 

Erised stra ehru oyt ube cafru oyt on wohsi

 

j.k.롤링의 해리포터를 알 것이다. 이 문장은 해리포터의 첫 번째 시리즈인 마법사의 돌 편에서 소망의 거울에 적혀 있었던 문장이다. 영어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 문장이 그저 ‘I show not your face but your heart's desire‘을 뒤집어 놓은 것이란 걸 알 것이다. 하지만 번역가는 뒤집어 놓은 문장을 그대로 번역했다. 제대로 번역했다면, 소망의 거울에 적혀 있어야 하는 문장은 라노추비 을망소 속 음마 의대그 라니아 이굴얼 의대그 는나였어야 한다.

나츠메 소세키는 교사시절, I iove you를 어떻게 번역할까 고민하던 제자에게 달이 참 아름답네요로 번역하라 했던 일화가 있다. 일본에는 일본인에게 맞는 정서가 있다. 직접적으로 사랑해를 말하는 것보다 돌려 말하는 것이 일본인의 정서에 맞다며 그리 충고 했었다고 한다. 후타바테이 시메이는 또 다르게 번역했다. “이제 죽어도 좋아로 번역했던 것이다. “이제 죽어도 좋아는 여러 가지 버전으로 나뉘는 데 번역가마다 조금 다르다. “이제 죽어도 좋을 것 같아”, “죽어도 좋아가 그 예다. 그러나 어느 쪽을 접하든 뜻만 통한다면 좋을 대로 생각해도 된다.

달이 참 아름답네요.”, “달이 예쁘네요.”, 혹은 이대로 죽어도 좋아”, “이제 죽어도 좋을 것 같아등 어느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든, 전해지는 뜻은 같다. 번역이 모든 사람을 만족 시킬 수는 없다. 어느 쪽을 더 좋다고 생각하든 뜻이 전해진다면 조사가 조금 다르다고 해도 상관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해리포터같은 명백한 번역 오류는 피해야 한다.

해리포터와 비슷한 오류는 비일비재하다. 큰 문제로 떠오르는 것은 연극이나 뮤지컬같은 극예술이다. 소설이나 시 같은 으로 나가는 것이라면 돈을 들여 교환을 해줄 여지가 있다. 인터넷으로 조사를 해서 공지를 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극예술은 다르다. 극예술과 영화의 차이점으로 가장 먼저 꼽히는 것이 현장성이다. 극예술은 무대에서 한 번 대사를 치면 끝이다. 고칠 수 도 없다. 때문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최근에 총 막을 내린 뮤지컬 중 하나가 외국의 라이선스를 따왔다고 한다. 헌데 이것이 문제가 되었다. 한참 연습을 하던 도중, 번역오류가 발견 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대사가 수정될 동안 창작극에서 주로 사용하던 쪽 대본을 이용해 연습을 했다고 한다.

번역이란 뜻이 전해져야 한다. 뜻이 달라져서는 안된다는 소리다. 일본에서는 해리포터의 번역본이 다른 나라보다 늦게 출간되었다. 그 이유는 해리포터에 나오는 말장난 같은 것을 일본의 정서에 맞게 번역하느라 수 명의 번역가가 달려들어 회의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요즘 번역들은 너무 직역에 치중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직역에만 의존하면 전달해야 할 뜻이 훼손되기도 한다.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번역가는 뜻을 전하는 사람이다. 직역 때문에 뜻이 훼손된다면, 번역을 하는 의미가 없지 않을까.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 'I love you'를 완전히 바꾸어버린 나츠메 소세키나 후타바테이 시메이의 번역감각을 한 번쯤 생각해봐도 좋을 것이다.

무인도의 여신님!



뮤지컬『여신님이 보고계셔』

1950년 6월 25일 새벽, 지금 우리가 6.25전쟁이라 부르는 싸움이 시작되었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서로가 주체가 되길 바라는 다툼이 이날 전쟁으로 바뀌었다. 이 전쟁은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을 맺고,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여신님이 보고계셔』는 이 전쟁을 다루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전쟁의 한복판에서 화합하고 힘을 합치는 북한군과 남한군의 가상의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여신님이 보고계셔』라는 제목에서 일본의 라이트 노벨 『마리아님이 보고계셔』나 『오, 나의 여신님』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여신님이 보고계셔』는 그런 라이트 노벨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앞서 말한 한국전쟁이, 바로 『여신님이 보고계셔』의 배경이다.

포로이송 임무를 받은 한영범과 이석구, 포로로 붙잡힌 이창섭,조동현, 류순호, 변주화. 이송도중 반동을 일으켰다가 바다위에서 가상의 섬으로 휩쓸려버린 이들은 탈출하기 위해 배를 고쳐야 했다. 그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바로 『여신님이 보고계셔』라는 뮤지컬이다.

1950년 6월 25일 이전에도 그들은 여러 번 다툼을 벌였다. 이념이 다르다는 것, 사상이 다르다는 것은 사소한 것으로도 사이가 틀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 간에 생각이 다르다는 것 하나로도 많은 오해가 생기는데 이념 자체가 다른 것은 그저 오해정도로 끝나는 일이 아닐 것이다. 그 근거로 결국 남한과 북한은 전쟁을 벌였다.

나중에 저 사람이 내 가족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혹은 이미 죽였을 지도 모르는 두려움을 무시하고 힘을 합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저들은 힘을 합쳐 섬을 빠져 나간다.

6.25 전쟁은 우리 한국에게 있어서 아픈 과거다. 한민족이라는 틀을 깨고 죽고 죽이는 살육을 했고, 우리나라만이 아닌 미국과 소련, 중국을 끌어들였다. 우리나라만의 아픈 기억이 아닌 다른 나라에게도 아픈 기억인 것이다. 그런 것을 소재로 다룬 다는 것은 꽤 위험한 일이다. 잘못하면 6.25 전쟁을 미화 시키거나 어느 한 쪽을 편들어 정당화 시켜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신님이 보고계셔』는 그러한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6.25전쟁이 배경이면서 6.25 전쟁에 대한 것은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대극장 뮤지컬만 성행하는 요즘, 한 번쯤 찾아 볼만한 뮤지컬이라고 생각한다.

『여신님이 보고계셔』는 2013년 초연을 하고 몇 달 뒤에 바로 재연을 이루어 냈으며 다음해 삼연, 그리고 해외 공연까지 이루어 냈다. 제 1회 서울뮤지컬페스티벌의 창작뮤지컬 육성지원사업 “예그린앙코르” 최우수작에 선정 되었으며 제 19회 한국 뮤지컬대상 ‘극본상’을 수상했다.

2014년은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가 10주년이 되는 해다. 그만큼 이미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거나 외국에서 성공한 『라카지』, 『헤드윅』과 같은 뮤지컬들이 대극장을 차지했다. 특히 10주년을 맞은 『지킬 앤 하이드』는 티켓팅을 시작한지 10분 만에 매진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늘 그랬지만 2014년은 그 이전보다 훨씬 대극장 위주로 뮤지컬이 성행했고, 성행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외공연까지 이루어낸 중극장 뮤지컬도 한 번쯤 볼만하지 않은가

1910년의 영웅, 아르센 루팡



뮤지컬 아르센 루팡은 모리스 르블랑의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의 시리즈를 원작으로 두고 있다. 원작과 다른 점은 뮤지컬 아르센 루팡의 인물들이 한 시리즈에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뮤지컬 아르센 루팡은 뤼팽 시리즈의 인물을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모은 창작극이다.

뮤지컬 아르센 루팡은 과거인 마리아 테레지아와 그녀의 딸 마리 앙뚜와네트의 이야기와17897월부터 17947월까지 있었던 프랑스 대혁명, 19101월에 있었던 파리 대홍수를 다루었다. 과거와 현재가 부딪히며 원작 아르센 뤼팽의 세 번째 시리즈 기암성을 새로운 에피소드로 탈바꿈 시켰다.

용두사미라는 말이 있다. 시작은 용의 머리처럼 크지만 끝은 뱀의 꼬리처럼 작다는 뜻이다. 모리스 르블랑의 아르센 뤼팽 시리즈는 잡지에 발표 했을 무렵부터 큰 인기를 모았고 지금에 와서는 수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다. 그것을 창작 초연한다는 것은 큰 도박이었다.

뮤지컬이 다루고 있는 에피소드는 기암성편으로, 여자 주인공은 넬리. 하지만 기암성 편의 여자 주인공은 제브르 백작의 조카딸, 레몽드이지 넬리가 아니다. , 제브르의 직업도 다르다. 원작에서 그는 이름뿐이어도 백작이지만, 뮤지컬에서의 그는 파리의 상원의원이자 법무장관이다.

뮤지컬의 대본작가는 루팡 시리즈 중 기암성편에서 모티프를 따와 새로운 에피소드를 추가했고, 그에 따라 등장인물이 원작의 캐릭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되었다. 따라서 잘못된다면 말 그대로 용두사미 꼴이 될지도 몰랐던 것이다.

루팡의 재미는 루팡의 뻔뻔한 성격에도 있지만 뮤지컬 아르센 루팡의 감상 포인트는 각 캐릭터들의 욕망이 충돌하는 2막이라고 생각한다.

먼 곳으로 시집가는 딸아이가 걱정되고, , 무슨 일이 생기면 패물로라도 살아남길 바라는 마리 테레지아의 마음, 그 패물이 탐나는 신하들. 그렇게 프랑스 대 혁명과 함께 역사는 묻혔다. 하지만, 기암성의 패물을 탐내하는 사람은 많았다. 그것은 1910년의 현재에도 바뀌지 않았다. 제브르 상원의원, 오페라 가수가 꿈인 조세핀과 그녀를 사랑한 레오나르도. 재물을 차지하고픈 그들의 욕망과 그들을 저지하고픈 루팡, 루팡을 잡아 자신의 정의를 관철 시키고픈 가니마르 경감과 이지도르. 그들의 욕망이 부딪히기 시작하는 것은 2막에서 부터다.

그들의 욕망과 뮤지컬의 흐름을 이해하려면 프랑스 대혁명과 대홍수를 알고 있어야 한다. 실제로 그것을 모르고 갔던 한 관람객이 공연 내내 뮤지컬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해 주변의 사람에게 물으며 관람을 했고 주변 사람들은 뮤지컬 감상에 큰 지장이 있었다.

프랑스 대혁명은 루이 16세가 통치하던 17897월부터 17947월까지 총 6년에 걸친 시민 혁명이다. 절대 왕정을 무너뜨리고 자유 평등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시민들의 반란인 것이다. 당시 프랑스는 재정이 무척 어려웠고, 흉년까지 들었지만 마리 앙뚜와네트와 그 측근들은 사치스러운 생활을 계속 이어갔고, 그것에 분노한 시민들이 들고 일어났고, 이로 인해 마리 앙뚜와네트와 루이 16세는 단두대에서 사형을 당했다.

19101월 파리 대홍수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겨울비였다. 따라서 프랑스 정부는 빠른 대처를 취하지 못했고, 세느강이 범람하였으며 시냐의 하수도와 지하철에 물이 찼다. 경찰과 군인들은 건물 2층에 갇힌 사람들을 보트로 구조했고, 난민들은 교회, 학교 등에서 임시거처를 만들었다. 당시 프랑스 시내를 거닐기 위해서는 보트를 이용하거나 목조로 만든 간이 다리를 이용해야만 했다.

이러한 시대 상황 속에서 부딪히는 각 캐릭터들의 욕망이 절정에 치달아 기암성을 향했을 때에의 긴장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뮤지컬은 노래가 필수적이다. 노래가 없으면 그것은 뮤지컬이 아니라 그저 연극이다. 감정이 고조 될수록 노래는 격해지고 캐릭터들의 욕망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그런 상황에서도 루팡은 자신의 뻔뻔한 성격으로 각 캐릭터들의 잘못된 욕망을 바로 잡고 기암성의 비밀을 밝혀낸다. 그러한 루팡의 모습은 우리가 자주 생각하던 영웅의 모습과 닮아있다.

영화 명량이 천만관객을 모았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순신 같은 리더가 현대 사회에 필요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루팡은 뮤지컬에서든 원작에서든 상대의 위선을 폭로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살인은 피하며, 빼앗은 보물은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러한 루팡의 모습이 사람들에겐 영웅으로 비추어 졌고, 지금도 영웅으로 보이기 때문에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아닐까.

푸른 장미 정원에서는

 

뮤지컬은 대부분 연말에 성행하는 편이다. 연말이 되면 사람들은 오랜만에 문화생활 한 번 해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연극이나 뮤지컬 등을 보기 마련이다. 그런 뮤지컬에 재미가 빠지면 사람들은 불평을 하기 시작한다.

뮤지컬은 정해진 극본을 연기한다. 뮤지컬이라는 특성상 배우의 애드리브로 상황에 변화를 줄 순 있어도 결국 결말이나 흐름은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람들에게는 취향이 있다. 좋아하지 않는 스토리, 연출, 넘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뮤지컬은 없다. 하지만 그 뮤지컬을 봤을 때 재미있었다.’라는 감상이 남았다면, 그것은 작품선택에 성공한 것 아닐까.

뮤지컬 선택에 앞서 보통은 캐스팅된 배우를 먼저 본다. 자칭 마니아들은 아이돌 캐스팅을 피하기 위해서, 아닌 사람들은 유명한 사람들이 캐스팅된 작품을 찾기 위해서다. 배우를 찾아가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자신이 싫어하는 배우로 뮤지컬을 본다면 좋은 스토리와 넘버라도 싫게 느껴질 때가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가 자신의 취향인 스토리와 넘버로 이루어진 뮤지컬만 하라는 법은 없다.

처음 뮤지컬을 접했을 때, 어떤 뮤지컬이 좋은지 어는 연출가가 내 취향인지 아무것도 모르면 결국 돈을 써가며 자신의 취향인 뮤지컬을 찾게 된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관람객도 있기 마련이다.

푸른 장미 정원은 아르센 루팡이라는 뮤지컬에서 따왔다. 극중에서 루팡은 물건을 훔칠 때마다 푸른 장미 한 송이를 두고 가는데, 그것은 루팡에게 있어서도, 루팡이 훔친 물건의 주인에게 있어서도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뮤지컬을 보기 전에 자신의 취향같은 것을 알고 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대부분 그런 것은 잘 공개 되지 않는다. 사전에 그 뮤지컬을 조금 이라도 알기 위해선, 유튜브에 나온 프레스콜을 보거나 프리뷰에 참석한 블로거들의 리뷰를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프레스콜은 하이라트 부분만 보여주고, 블로거들은 자기들만 알 수 있는 용어를 쓰기 때문에 용어를 알지 못하면 과연 이 뮤지컬이 내게 맞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따라서 푸른 장미 정원은 뮤지컬을 보면서 꼭 알아야 할 용어들을 다루고, 각 뮤지컬의 포인트와 추천 뮤지컬들을 다뤄볼 생각이다.

루팡이 물건을 훔치면서 푸른 장미를 남겼던 이유는 무엇일까. 푸른 장미를 남김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알림과 동시에 무언가 남기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푸른 장미 정원의 칼럼은 읽는 사람에게 단순한 뮤지컬 입문서나 뮤지컬 리뷰만으로 남고 싶지 않다. 루팡은 물건을 훔침으로써 사람들에게 물건에 대한 아쉬움, 집착과 함께 한 송이 장미를 남겼다. 푸른 장미 정원의 칼럼 또한, 그런 예쁜 장미 한 송이로 기억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