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시간을 만든 컴퓨터 프로그램 지식채널e -「엘리자」를 보고


 

소중한 시간을 만든 컴퓨터 프로그램 

지식채널e -엘리자를 보고

 

   사람들은 저마다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이 하나쯤은 있다. 물론 아직까지 그러한 사람을 찾지 못한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살아가면서 생기는 가족, 연애 등과 관련된 문제들이 생겼을 때 해결책을 찾거나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에 믿을만한 사람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여기, 그런 역할을 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있다. '엘리자'. 엘리자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굉장하다.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특별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엘리자와의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사람도 있다.

   엘리자는 사람들이 말하면 '맞장구쳐주기''끊임없이 질문해주기'라는 두 가지 스킬을 쓴다. 예를 들면,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했을 때, 엘리자는 '그 사람에 대해서 더 말해 줄래요?'라는 식으로 질문을 한다는 것이다. 또한 화가 난 사람에게는 동의를 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엘리자가 자신을 이해하는 것처럼 느끼게 되고 사람들은 엘리자를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현대 사회에 들어서면서 사람들 사이에 대화와 소통이 줄어들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심화되는 것이 기본적으로 깔려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현상이 단순히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는 사람들에게 일어난다고 생각해버리면 곤란하다. 주변에 상담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자와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없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른 이유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일단, 특정 주제에 관해서는 상담자와의 견해 차이가 있어서 대화가 통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이해를 바랄 수 없게 된다. 나와 비슷한 사람은 있지만 완전히 같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때 엘리자는 고민이 있는 사람의 마음속에 파고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언제나 듣기 좋거나 원하는 이야기만 해줄 수 없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입장이나 생각을 이해는 하지만, 그 사람을 위해 듣기 싫은 말을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리고 상담자 본인의 입장 때문에 싫은 소리를 해야 할 때가 생기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서 듣고 싶은 대답을 정해놓고 질문을 한다는 의미의 답정너라는 말이 생기기도 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사람은 사실 사소한 것이라도 자신이 원하는 말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약간의 차이들이 있을 뿐이지 누구나 기대심리는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지만 누군가에게 털어놓으면 속이 시원해질 것 같다는 이중적인 마음이 작용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비밀이나 고민 등을 누군가에게 털어놓는다는 것은 자신의 속에 있는 무거운 짐을 잠시 덜어내는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 프로그램과 대화를 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정화시키는 방법이 좋지 못하다고 단정지어서 말하기는 어렵다. 사람이나 상황에 따라서는 많은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이미지로 떠올려보면 씁쓸하다. 개인 간의 소통이나 교감이 안 되는 상황은 사회의 소통과 교감이 막히는 상황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엘리자가 만들어진 것은 1966년이다. 거의 50년이 지난 지금도 엘리자와 비슷한 프로그램이 있다. , 스마트폰 시대에 맞춰서 어플로 만들어져 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 소통하는 면에서 점점 퇴보해가고 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혜민 스님은 내 이야기를 따뜻하게 잘 들어주는 사람과의 만남은 보약 한 첩을 먹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하셨다. 추위가 계속 되는 요즘, 우리도 주변 사람들에게 보약이 되어보는 것이 어떨까.

우리가 그들을 욕할 수 없는 이유 - 지식채널e 「합리적인 인간들」

 

 

우리가 그들을 욕할 수 없는 이유

 

- 경제 시리즈 시즌3 7합리적인 인간들을 보고

   우리는 항상 합리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교육받는다. '합리적'의 사전적 정의는 '이론이나 이치에 합당한, 또는 그런 것'이다. , 합리적인 사람은 세상의 이치에 맞게 행동하는 사람이며 사회는 이런 사람들을 키우려는 것이다. 그러나 개개인의 시각으로 보면 합리적이라는 것은 곧 이익을 얻는다는 것이다. , 자신의 이익에 충실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은 이기적인 선택을 한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제임스 뷰캐넌은 이런 점 때문에 시장이 실패하는 것처럼 정부도 실패할 수 있다고 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일해야 하는 정부 또한 이기적인 개인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정부에도 합리적인 선택을 하도록 교육받은 사람들이 모여 있고 따라서 공공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이 충돌할 때 개인의 이익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을 포함한 기득권층의 이익을 위한 법안을 만들고 연예인들의 사생활과 같은 다른 사회적 이슈로 사람들의 눈을 돌려서 소위 덮는행위를 하는 것이다. 또한 자신과 자신이 속한 당이 더 많은 권력을 잡기 위해 실제로는 그다지 쓸모없지만 그럴 듯한 법안을 만들기도 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본래 기업은 이익을 추구하는 단체이다. 그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아더. 정확히 말하면 기업은 경쟁을 통해서 이익을 추구하는 단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쟁보다 더 손쉽고 효율적인 방법이 있다. 그것이 바로 로비다. 로비는 기업 뿐 아니라 정부에 속한 사람들에게도 이익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정경유착이라는 것이 일어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라고 칭할 수 있는 소비자나 유권자는 위와 같은 사람들을 욕할 수 없다. ‘우리의 이기적인 선택으로 만들어 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물건을 고를 때에도 이러한 점을 알 수 있다. 물론 성능이나 디자인 등을 비롯해서 다양한 것들이 충족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위의 요소들만을 고려하는 것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사회적 책임을 다 하는 기업이 생산한 제품을 사려고 노력해야한다.

   우리는 공공의 일을 할 사람을 뽑는 선거일에도 이기적인 선택을 한다. 선거일을 이용해 여행을 떠나기도 하며 딱히 하는 일이 없더라도 수고를 들여 투표장에 잘 가려고 하지 않는 것을 이기적인 선택의 예로 들 수 있다. 공약을 꼼꼼히 보지 않고 대충 찍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실제로 어떤 것이 이득인지 생각해보자. 이 때 사람들은 우리가 순간적인 행복을 위한 선택을 하는 것이 정치인들의 힘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자신을 위하는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이것을 합리적인이라는 단어로 바꿔 말해서 교육을 시키기도 한다. 때에 따라서 합리적이거나 이기적인 선택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바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순간적이고 단기적인 이익보다는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합리적인 선택을 꼭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순간에 확실하게 하지 않는다면 일이 잘못되어갈 때 목소리를 낼 자격도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식채널e  「합리적인 인간들」

http://www.ebs.co.kr/replay/show?courseId=BP0PAPB0000000009&stepId=01BP0PAPB0000000009&lectId=10256192

열정만큼은 부러운 사람들 - 지식채널e 「행복한 오타쿠」

 

 

 

열정만큼은 부러운 사람들

- 지식채널e 행복한 오타쿠를 본 후

 

   오타쿠라는 단어에 대한 이미지는 어떠한가.보통 부정적이다. 특히 일본 애니메이션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비하하는 말로 많이 쓰인다. ‘너 오타쿠지.’라는 말은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또래 애들이 약간은 경멸의 의미를 담아서 하는 말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러나 원래 오타쿠는 일본어에서 당신의 존칭인 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것이 가타카나로 쓰였을 때, 특정한 것에 몰두하고 다른 분야의 지식과 사교성이 결여되어 있는 사람을 뜻하게 된다고 한다.

   처음, 오타쿠라는 이름으로 애니메이션이나 컴퓨터에 몰두하던 사람들이 소개되었을 때는 별종취급을 하긴 했지만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지 않았다고 한다. 1989년 자신의 성적 만족을 충족시키기 위해 4명의 유아를 연속 살인한 사건이 일반인들에게 오타쿠의 어두운 이미지를 심어준 계기였다고 한다. 범인인 미야자키 츠토무의 방에서 비디오 테이프와 만화가 가득 나왔으며 그가 속한 비디오 동호회에서 서로를 오타쿠라고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행복한 오타쿠에서 오타쿠의 뜻을 풀었던 것과 같이 요즘은 오타쿠가 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즉 사교성이나 다른 분야의 지식이 결여되어있다는 옵션이 떼어진 것이다. 이것은 기존의 부정적인 뜻이 축소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오히려 한 분야에 열중한다는 점은 오타쿠에게서 본받을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영상에서의 에반게리온 오타쿠 두 명을 봐도 알 수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노트북과 온갖 귀중품을 팔아 여행 자금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처럼 자신들이 가진 것을 희생하면서 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열중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일에 열중하고 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열중이라는 단어는 몸, 마음, 정신, 감정이 그 곳에 가있는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모든 것이 온전히 한 곳에 가 있으려면 그 대상을 좋아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못 배길 것이다. 따라서 일이 너무 좋아서 일과 결혼한 것이 아니냐는 말을 듣는 지경의 워커 홀릭이 아니라면, 진정한 의미에서 일에 열중하고 있다고 하기는 힘들다.

   물론 지금의 우리나라 사회는 취직할 때 대학교 전공조차 살리기 어려운, 힘든 사회라고 한다. 보통 사람들은 먹고 살기도 바쁘다. 열중까지는 못하더라도 좋아하는 것에 열정을 보이고 싶은데, 시간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꼭 열정 = 시간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현실과 타협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대로 한다면, 그 것에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살기 바쁘고 팔 귀중품도 없어서 에반게리온 여행을 가지 못한 사람에게 에반게리온에 대한 열정이 부족하다는 말을 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사람은 어떤 것이든 열정을 보일 만큼 좋아하는 일이나 대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열정을 보일 것이 굉장히 사소한 것이어도 상관없다. 음악 장르, 가수, 애니메이션, 동물, , 화장품, 게임, 음식, 사진, 운동, 수집 …… 뭐든지 괜찮다. 이미 자신의 열정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모른다면 빠른 시일 내에 찾아라. 찾아봤는데도 열정을 쏟을 것이 하나도 없다고? 그렇다면 당신만큼 불행한 사람은 없다.

 

지식채널e 행복한 오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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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디케가 보지 못하길 바라는 것은 - 지식채널e「누가 디케의 눈을 가렸나?」

 

지금, 디케가 보지 못하길 바라는 것은

  -누가 디케의 눈을 가렸나?를 본 후 

   ‘디케라는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정의의 여신이다. 디케는 칼과 저울을 한 손에 하나씩 들고 있다. 옳고 그름의 무게를 잴 수 있는 저울로 진실을 밝혀내고 올바르지 못한 자를 칼로 처벌함으로써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또 하나, 디케는 눈가리개를 하고 있다. 아니, 하고 있는 디케도 있고 하지 않은 디케도 있다.

   내가 디케 상()을 처음 봤던 것은 초등학교 때 교과서에 실린 사진을 통해서였다. 사진 속의 디케가 눈가리개를 했는지에 대한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디케 상()은 각 나라의 사법 기관 건물 앞에 세워져 있는데, 정의를 구현하겠다는 다짐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기 위해서라는 식의 설명이 덧붙여 있었던 것은 기억한다.

   디케는 원래 눈가리개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디케의 눈은 불의를 꿰뚫어 볼 수 있다고 여겨졌다고 한다. 저울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는지 봐야 했던 것도 디케가 눈을 가리지 않았던 이유일 것이다. 디케의 눈을 가린 것은 제바스티안 브란트였다. 그는 1494년 르네상스 시대에 출간된 바보배라는 책을 썼다. 그 책에는 많은 바보가 등장하는데, 그 중 디케에게 눈가리개를 씌우는 바보도 등장하는 것이다.

   지금은 디케의 눈가리개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 불필요한 것을 보지 않으려고 착용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 공정한 재판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디케의 눈을 가리는 행동을 하는 것이 바보가 할 만한 짓이라고 여겨졌다. 디케가 저울이 어디로 기울었는지 알지 못해서 정의를 분간하지 못하게 막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누가 눈 먼 정의를 바랐던 것일까. 일단은 사회적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특권들을 지키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특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편리한지 알게 되면,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문제는 지키는 방법에 있다.

   어떤 사회가 바람직하게 되기 위해서는 정의를 지켜야 한다. 완전히 일치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 정의가 강제성을 띄는 것이 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특권을 가진 사람들은 종종 특권을 지키기 위해 또는 더 많은 특권을 차지하기 위해 법과 정의에 위배되는 일을 하기도 한다. 당연히 디케의 눈에 들키면 안되는 것이다.

   브란트가 쓴 바보배에는 사건을 마냥 길게 끌어라. 정의 따위 내가 알게 뭐람!’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이 말을 시원하게 해결이 되고 있지 않은 국가 · 사회적 사건과 연결시켜 보자. 누군가가 디케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눈가리개를 씌우고 싶어 한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앞에서 디케의 눈가리개는 원래 정의를 보지 못하는 것을 의미했지만 지금은 공정한 재판의 상징으로 생각되기도 한다고 했다. 누군가가 진실을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간을 질질 끌고 우리에게 눈가리개를 씌운다면,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의 시간을 잊어보는 것은 어떨까.

 

지식채널e「누가 디케의 눈을 가렸나?」

 http://www.ebs.co.kr/replay/show?courseId=BP0PAPB0000000009&stepId=01BP0PAPB0000000009&lectId=10255174

당신은 어떤 단어로 문장을 만드나요 - 지식채널e「처음 글쓰는 이들을 위하야」


                        

 

                 당신은 어떤 단어로 문장을 만드나요 

                                                                      -「처음 글쓰는 이들을 위하야」 를 본 후


  대학교에 막 들어오는 1학년 1학기에 우리 학과는 「문장 연습」이라는 전공 필수 과목을 듣는다. 문창과라는 특성상 글을 이루는 문장을 다듬어서 쓰는 것은 기본이기 때문이다. 「문장 연습」 은 문법적으로 뜻이 분명하지 않거나 중복 되었거나 잘못된 문장을 고치는 연습을 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진 강의이다. 위와 같은 문장들을 고치고 있다보면 조사 하나, 단어나 표현 하나의 차이로 문장이 얼마나 명확해지는지 느끼게 된다. 
   문장을 문법에 맞게 쓰기만 하면 끝나느냐,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제 시작이다. 같은 것을 쓰더라도 사용하는 단어에 따라 주는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 영상에 나왔듯이 소설가 이태준은 오이가 덩굴에 열린 것을 표현하는 예를 들었다. 오이가 열렸다고 하는 것, 오이가 매달렸다고 하는 것, 오이가 늘어졌다고 하는 것의 뜻이 전부 다르다는 것이다. 당연히 느낌도 다르다.
   그렇다면 문장을 구성하는 말을 어떻게 골라야 할까. 답은 관찰 밖에 없다. 이것 또한 이태준의 연재글에 나온 이야기이다. 교수님들께 닳도록 들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만큼 글을 쓰느데에는 관찰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시 창작 강의를 들었을 때는 멸치를 며칠 동안 가지고 다니면서 관찰하고 시 한 편을 쓰라는 과제를 받았을 정도다.
   글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를 하면 쉬울 것이다. 같은 것을 관찰하더라도 그 사람의 가치관이나 생각, 보는 시선에 따라 각각 다른 부분에 초점이 맞춰지기 때문이다. 초점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게 되고 그렇게 관찰한 것을 토대로 글을 구성하는 단어와 문장들이 달라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년을 올라가다 보면 동기들의 글은 이름이 쓰여있지 않아도 누가 쓴 것인지 어느 정도는 다들 맞춘다. 분위기가 드러나는 것이다. 
   그런데 글을 쓰는 이런 방법들은 습작생이나 작가와 같은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것일까.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서는 어떤 종류의 글이든 안 쓰기가 힘들다. 대학교에 지원 할 때, 입사 지원서를 쓸 때 자기소개서를 쓰고 대학에서는 레포트를 쓰며 회사에서도 각종 보고서를 쓴다. 이러한 글 모두 문장과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 자기소개서는 물론이고 양식이 정해져 있어 자유롭지 못한 글인 보고서마저도 구성하고 있는 문장과 단어에 따라서 주는 느낌이 다르다. 많은 대학에서 글쓰기에 관한 강의를 교양 필수로 지정해서 학생들에게 꼭 듣게 만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제 곧 한글날이다. 휴일이라고 좋아하기만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우리가 쓰는 말과 글이 비속어나 은어를 얼마나 담고 있는지 한 번 쯤은 신경써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 한글날에는 자신이 어떤 문장과 단어를 고르고 있는지, 그 단어의 분위기는 어떤지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글은 쓰기 싫어하거나 어려워하는 사람일수록 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어쩌면 글쓰기가 재미있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소설가 이태준이 괜히 연재물인 「글짓는 법 A·B·C」의 부제를 '처음 글쓰는 사람들을 위하야'라고 지은 것이 아니다.



지식채널e「처음 글쓰는 이들을 위하야」
http://www.ebs.co.kr/replay/show?courseId=BP0PAPB0000000009&stepId=01BP0PAPB0000000009&lectId=10157135

 

최지열의 생각하는 5분 소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분은 그 책에 빗대어 ‘청춘을 위한 나라도 없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이 옳건 그르건 지금 우리 대학생들의 현실을 반영하는 말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대학생들은 살기 위해 취업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그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준비해야 합니다. 심지어 외국인들이 나와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까지 우리나라의 취업 3종 세트, 6종 세트, 9종 세트가 언급되기도 했습니다. 점점 취업을 위한 경쟁이 과열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준비를 하느라고 정작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교양이 부족한 경우들이 많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만으로도 벅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으로서 있을 수 있는 것은 생각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생각하는 힘’이란 교양 지식에 기반해서 사람 나름대로 메시지를 만들거나 인식할 수 있는 힘을 말합니다.

『돋움』은 대학생들의 교양 향상에 목적을 두는 팀 블로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돋움』 안에 좀 더 다양한 분야의 교양을 담을 수 있을지, 그러려면 「생각하는 5분」이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해보았습니다. 그 결과 EBS에서 방송하는 『지식채널 e』를 활용해보기로 했습니다. 여러 분야의 화두를 다룬다는 점이 매력으로 다가왔고 개인적으로는 그 5분짜리 영상 덕분에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생각하는 5분」에서는 매주 하나의 지식채널e 영상을 선정하여 영상에 대한 생각을 쓰는 방법으로 칼럼을 구성할 것입니다. 또한 영상이 궁금한 분들을 위해 칼럼의 마지막에 해당 영상의 링크를 올려 쉽게 영상을 볼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다양한 분야를 두루두루 살피려고 하기 때문에 수박 겉핥기의 위험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 칼럼을 통해 잠깐이라도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런 시간을 통해 저도, 이 칼럼을 읽는 분들도 같이 성장해나갈 수 있었으면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