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디케가 보지 못하길 바라는 것은 - 지식채널e「누가 디케의 눈을 가렸나?」

 

지금, 디케가 보지 못하길 바라는 것은

  -누가 디케의 눈을 가렸나?를 본 후 

   ‘디케라는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정의의 여신이다. 디케는 칼과 저울을 한 손에 하나씩 들고 있다. 옳고 그름의 무게를 잴 수 있는 저울로 진실을 밝혀내고 올바르지 못한 자를 칼로 처벌함으로써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또 하나, 디케는 눈가리개를 하고 있다. 아니, 하고 있는 디케도 있고 하지 않은 디케도 있다.

   내가 디케 상()을 처음 봤던 것은 초등학교 때 교과서에 실린 사진을 통해서였다. 사진 속의 디케가 눈가리개를 했는지에 대한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디케 상()은 각 나라의 사법 기관 건물 앞에 세워져 있는데, 정의를 구현하겠다는 다짐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기 위해서라는 식의 설명이 덧붙여 있었던 것은 기억한다.

   디케는 원래 눈가리개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디케의 눈은 불의를 꿰뚫어 볼 수 있다고 여겨졌다고 한다. 저울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는지 봐야 했던 것도 디케가 눈을 가리지 않았던 이유일 것이다. 디케의 눈을 가린 것은 제바스티안 브란트였다. 그는 1494년 르네상스 시대에 출간된 바보배라는 책을 썼다. 그 책에는 많은 바보가 등장하는데, 그 중 디케에게 눈가리개를 씌우는 바보도 등장하는 것이다.

   지금은 디케의 눈가리개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 불필요한 것을 보지 않으려고 착용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 공정한 재판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디케의 눈을 가리는 행동을 하는 것이 바보가 할 만한 짓이라고 여겨졌다. 디케가 저울이 어디로 기울었는지 알지 못해서 정의를 분간하지 못하게 막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누가 눈 먼 정의를 바랐던 것일까. 일단은 사회적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특권들을 지키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특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편리한지 알게 되면,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문제는 지키는 방법에 있다.

   어떤 사회가 바람직하게 되기 위해서는 정의를 지켜야 한다. 완전히 일치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 정의가 강제성을 띄는 것이 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특권을 가진 사람들은 종종 특권을 지키기 위해 또는 더 많은 특권을 차지하기 위해 법과 정의에 위배되는 일을 하기도 한다. 당연히 디케의 눈에 들키면 안되는 것이다.

   브란트가 쓴 바보배에는 사건을 마냥 길게 끌어라. 정의 따위 내가 알게 뭐람!’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이 말을 시원하게 해결이 되고 있지 않은 국가 · 사회적 사건과 연결시켜 보자. 누군가가 디케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눈가리개를 씌우고 싶어 한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앞에서 디케의 눈가리개는 원래 정의를 보지 못하는 것을 의미했지만 지금은 공정한 재판의 상징으로 생각되기도 한다고 했다. 누군가가 진실을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간을 질질 끌고 우리에게 눈가리개를 씌운다면,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의 시간을 잊어보는 것은 어떨까.

 

지식채널e「누가 디케의 눈을 가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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